선산과 조상의 숨결
영양남씨 석호공파 종중

일찍이 시에서도 이기세폭포를 대구의 명소로 지정했을 만큼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며, 이기세의 대표적인 자랑거리이다. 폭포의 웅장한 물소리를 뒤로하고 석문으로 향하는 좁은 바위 길을 오르면, 좌우로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가 오가는 이들을 맞이하며 수백 년 동안 우리 선산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와룡암 석문(臥龍庵 石門)’이라 음각된 바위 문을 지나면, 절벽 위에 또 다른 평평한 너럭바위가 나타나 잠시 쉬어가며 목을 축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멀리 굽이치는 팔공산 자락이 시야에 들어오고, 시원하게 펼쳐진 전망은 새삼 호연지기를 느끼게 하는 천혜의 명소이다.
평탄한 길을 백여 걸음 걸어가면, 넓은 골짜기 첫끝자락에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와룡암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약 300년 전 와룡암을 창건한 용암공(龍巖公) 휘 명신(諱 明新, 16세)께서는 이곳에서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며 후학을 양성하셨고, 종중을 대표하는 재실로 가꾸셨다. 현재는 이기세와 더불어 우리 마음속의 고향이자 조상들의 얼이 깃든 유서 깊은 공간으로 남아있다.
수백 성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건물의 노후화는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원형 보존은 어려운 실정이며, 산속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보수 공사 또한 쉽지 않아 임시적인 조치와 최소한의 보존책으로 유지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6.25 전쟁 당시 군 비행장 건설로 인해 흔적조차 사라진 석호정(石湖亭)과 더불어 와룡암은 종중의 중요한 상징이었으며, 후손들에게는 자존감과 정체성을 심어준 소중한 유산이었기에, 홀로 산속에 서 있는 와룡암의 모습은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조만간 여건이 마련되는 대로 보수를 하여 시절마다 종원들이 모여 화합하는 공간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기를 기대하며, 와룡암을 뒤로하고 이정표를 따라 가쁜 숨을 내쉬며 약 500m의 야자 매트 길을 오르면 석호원(石湖園)에 다다른다.
석호원은 단산지 묘역에서 이장해 온 석호공과 몇몇 선조들, 그리고 이기세를 지키시던 여러 집안의 어른들이 함께 영면하고 계시는 성스러운 종중 묘원이다. 예연산 바로 정상 아래 위치한 석호원은 접근이 용이한 곳은 아니지만, 예로부터 명당으로 여겨져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신성한 선영 터로 여겨져 온 이기세의 성지이다.
우리 종중의 대표적인 묘원으로, 넓은 터에 잘 가꾸어진 잔디와 여름 내내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이곳을 참으로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남쪽으로 탁 트인 전망 너머로는 용암산이 마주하고 있다. 용암산 정상 바로 아래까지가 이기세의 경계이며, 용암산성의 주요 방어벽 역할을 수행했다. 아직도 용암산성 정상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산성을 수호하기 위해 왜군과 전투를 하던 의병들의 우렁차고 절박한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기세는 팔공산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여 산세가 수려하고 지기가 신령스러움은 두말할 나위 없으며, 용이 머물다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신성한 땅이므로, 장차 종중에서 큰 인물들이 배출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예로부터 용암공께서는 와룡암에 기거하시면서 교유하던 선비들과 함께 자연을 벗 삼아 자주 시를 읊고 학문을 연마하셨는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시 중 ‘암거십경(巖居十景)’은 이기세의 빼어난 풍광을 찬양한 매우 아름다운 시로 평가받는다. 암거십경에서 노래한 열 가지 절경은 현재까지도 이기세에 고스란히 남아 우리 종중의 소중한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다. ‘용암(龍巖), 예연(禮淵), 폭포(瀑布), 석문(石門), 석경(石逕), 성령(誠嶺), 구암(龜巖), 덕봉(德峰), 향암(香巖), 공악(公嶽)’으로 명명하여 그 아름다움을 찬양하였으며, 더불어 ‘용암기(龍巖記)’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풍광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고 표현한 글귀는 공과 당대의 선조들이 이곳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기세폭포에서 조금 아래쪽에 위치한 예연폭포는 동굴 형상의 거대한 절벽을 끼고 있으며, 흘러내린 물은 연못을 이루어 잠시 머물다 다시 아래로 흘러간다. 선조들은 폭포수가 떨어지는 아래에 형성된 연못을 ‘예연(禮淵)’이라 칭하고, 수시로 맑은 물에 몸을 담그고 마음을 정갈하게 하여 선비의 예도를 닦았다.
용암산의 맞은편에 자리한 예연산은 남향의 완만한 경사지로 조상들의 분묘가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비교적 접근이 용이하여 이기세의 중심을 이루는 산이다. 족보를 살펴보면 조상 대부분의 묘지 위치가 ‘예연(禮淵)’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우리 종중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진정한 영산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선돌마을에서 대암선산을 따라 멀리 대암봉을 넘어 이기세를 왕래하던 선조들의 고된 발걸음을 기억하며,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이기세를 앞으로도 우리 혈족의 본향이자 종중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는 상징으로 삼고, 후손들에게는 자긍심과 함께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의 마음가짐을 일깨워주는 근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 처음 발을 디딘 순간부터, 아직 고른 숨을 쉬고 무릎이 건강한 동안에는 틈틈이 이기세 이곳저곳을 가꾸고 보살피는 것이 종중을 이어갈 후손의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鎬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