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남씨 석호공파 종중 스킵네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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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석호공파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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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암정

신암정

신암정

신암정(愼菴亭)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섬촌1길 42-4에 위치한 신암 남손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누정이다.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섬촌1길 42-4에 위치한 신암 남손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누정이다.

평지에 자리잡은 신암정은 사면에 한식기와를 올린 토석담을 두르고 있으며, 전면 담장 중앙의 사주문을 통하여 출입한다. 사주문 밖 정면에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공터와 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우측으로는 섬촌 1길이 지나고 좌측으로 밭과 이웃 가옥이 있다. 배면에도 밭이 있다.

신암정은 정면 4칸 측면 1.5칸의 ‘ㅡ’자형의 누정건축으로 정면에 툇마루가 있고, 2칸의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다. 마루간의 정면에는 툇마루 쪽으로 네 짝 여닫이 들어걸개문을 두어 출입하고, 후면에는 두 짝 우리판문을 달아 외부와 통하도록 하였다. 좌우 온돌방은 각각 전면에 머름을 장식하고 위에 두 짝 여닫이문을 두었고, 측면으로 외여닫이문을 두어 출입하도록 하였다. 마루와 온돌방은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아 연결시켰다.

신암정의 기단은 정다듬한 자연석을 외벌대 기단이고, 주초는 자연석주초다. 아궁이는 온돌방 정면이 있으며, 배면에 굴뚝을 마련했다. 초석 위에 툇기둥은 원기둥을 올렸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원기둥 상부와 마루간 배면은 창방과 장여, 도리를 짜 맞춤을 하여 소로로 수장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소로 없이 판재로 마감하였다. 가구는 일고주 오량의 가구이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며, 지붕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했다.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의 끝은 망와를 장식하였고, 벽체와 서까래 사이는 회를 발라 마감하였다. 처마도리에는 ‘신암정(慎菴亭)’ 편액이 걸려 있다.


신암공 종택

신암공 종택

신암공 종택

신암공 종택

신암공 종택

신암공 종택

신암공 종택

신암공 종택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섬촌리 708번지에 위치한 신암공파 종택은 신암공 남손(1415~1488)을 파조(派祖)로 하는 영양 남씨(英陽南氏) 후손들이 거주하는 종택이다. 경치가 아름다운 초막골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다.

18세기에 안동김씨 문중에서 건립한 가옥인데 남손의 14대 주손인 남기영(1853~1938)과 종인이 합심하여 종택으로 구입하였다. ㄱ자형 안채, 일자형 사랑채,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나 사랑채와 방앗간채는 소실되었고, 현재 ㄱ자의 안채만 남아 있다. 최근에 복원된 사랑채[건너채]와 협문이 어우러져 고가의 멋을 뽐낸다. 경상도 산간지역 가옥인 까치구멍집의 구조로, 안방과 모방 상부에 벽체를 설치하지 않고 상부 더그매를 노출시켜 합각 부분에 환기구멍을 둔 것이 특징이다.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섬촌리는 신암공 남손(南蓀, 1415~1488)을 파조(派祖)로 하는 영양 남씨 후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남손은 조선시대 무인(武人)으로, 영양군에서 태어나 20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군위현감과 의흥위부를 지낸 인물이다.

본래 섬촌리에는 봉성 금씨가 거주하였는데 18세기에 이들이 나가고 영양 남씨가 입촌해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섬촌리에 세거하던 그의 후손들이 이웃에 위치한 안동김씨 가문의 건물을 매입하여 종택으로 삼았다. 14대 주손인 남기영과 신암공파 혈족들이 함께 종택 구입 기금을 마련하여 1893년에 매입하였다고 한다. 이후 종택을 중심으로 가문의 전통을 잇고, 향촌의 제반 문제에 관여하는 등 지방의 유력 사족으로서의 위상을 지켜왔기에 경상북도 종택의 면모가 잘 갖추어져 있다.

과거의 웅장했던 종택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전통적인 고가의 멋스러움은 유지하고 있다. 가옥의 전면에는 대문채가 없어 빈 공간으로 비워져 있다. 원래 사랑채와 안채의 이동은 이곳 대문채를 통해 왕래하도록 되어 있다. 대문채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 둘레에는 한식 담장을 둘러 두었다. 담장 안의 넓지 않은 공간에는 가장 북쪽에 ‘ㄱ’자형 안채를 두고, 그 우측에 ‘ㅡ’자형 사랑채를 두고, 안채 좌측에는 뒷간채 1채를 두고, 사랑채 앞에 뒷간채 1채를 두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담을 두르지 않고 화계로 경계를 삼았다. 안채의 배면과 서측면에 토석 담장에 한식 기와를 올려 고풍스러움이 묻어난다. 사랑채는 사면에는 낮게 돌담을 둘렀다.

정면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안채 앞의 넓은 마당이 보인다. 건물의 중심인 안채는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정면 4칸, 측면 5칸 규모의 ㄱ자형 건물이다. 자연석으로 높지 않게 기단을 쌓았는데, 사각기둥을 세우고 일고주 오량형의 집으로 팔작지붕을 얹었다. 반면 측면의 고방은 삼량가이며, 맞배지붕이다. 중앙에는 2.5칸 규모의 대청을 두고, 정면에는 반간 규모의 봉당을 두었다. 그 좌측에 1.5칸 규모의 안방(온돌방)을 두고, 안방 옆으로는 전면에는 정지를 두고, 후면에는 2칸 크기의 고방을 연접해서 ㄱ자형을 구성하였다. 안방 정면 쪽마루 아래쪽과 부엌에 아궁이를 설치하였으며, 옹기를 겹쳐서 만든 고풍스러운 굴뚝은 배면 좌우측 양 끝에 두었다. 안방은 측면에 세살문을 달아 외부와 소통이 용이하도록 하였고, 우측에는 상방과 마루방을 겹집으로 배치하고, 상방 뒤에 마루를 깔아 대청과 ㄱ자로 이어지게 하였으며, 마루방 뒤에는 모방을 두었다. 안방과 모방의 상부에는 벽체를 설치하지 않고 지붕과 천장 사이의 빈공간인 더그매가 그대로 노출되고, 합각 부분에 환기구멍을 만들어 까치구멍집 구조로 되어 있다. ㅁ자형의 까지구멍집과 달리 ㄱ자형의 개방형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랑채는 자연석 기단에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일자형 건물을 올렸다. 자연석 주초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홑처마에 초가를 얹어 선비의 소박함이 드러난다. 정면으로 시멘트모르타르로 마감한 넓은 마당이 있고, 전면을 제외한 삼면은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아 담을 구성하였다. 우측에는 화계가 잘 꾸며져 있어 안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좌측부터 정지 한 간과 온돌방 3간이 연결되어 일자로 배치되어 있다. 우측 방의 정면과 일부 측면에는 쪽마루를 둘렀다. 나머지 방과 부엌은 외여닫이 세살문과 외여닫이문을 달아 외부와 연결하였다.

출처, 사진 : 지역N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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