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영양남씨 석호공파 종중
월성김공은 청금공의 빙부로서 휘는 정미이다.
석호공 입향 때에 같이 이거하셨고 김공이 후손이 없어 공께서 평생을 지극히 섬겼다.
예전부터 종중에서 외손된 도리로 매년 제를 올리고 늘 기억하기 위해 묘표를 세우고 묘소를 관리해 왔다.
돌아 가신 후 단산지 석호공 묘역에 계시다가 석호원 조성 시 함께 개장하였다.
월성김공 구묘표
惟 我十代祖 石湖公 實의 長子 聽琴公 諱 斗極의 聘父 月城金公 精美之墓가 塋域 內에 있으나 後孫이 無하여 于今 九代로 外孫 奉祀 中이나 公의 外孫 三兄弟 天翮 天羽 天翰 後孫이 繁盛하여 百數十戶로 一門을 이루었으니 어찌 公의 盛德之恩이 적다 하오리요 自古로 外家없는 親孫이 없다 하였거늘 後孫 永遠히 先祖의 遺志를 받들고 公의 恩寵을 報答하고 길을 빛내고저 함에 이에 微誠이나마 獨單으로 床石과 墓表를 謹堅하고 淺才薄識으로 몇 字의 墓銘을 撰하옵니다.
檀紀 四三一六年 癸亥 九月
外裔孫 南輪煥 謹撰 謹堅
外裔孫 南仁煥 謹書
저의 10대조이신 석호공(石湖公) 실(實)의 맏아들, 청금공(聽琴公) 휘(諱) 두극(斗極)의 장인(聘父)이신 월성 김공(月城金公) 정미(精美)의 묘소가 이 묘역(塋域)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후손(後孫)이 없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9대째 외손(外孫)들이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곳에 잠드신 공(公)의 외손 삼 형제, 즉 천핵(天翮)•천우(天羽)•천한(天翰)의 후손(後孫)들이 크게 번성(繁盛)하여 수백 가구에 이르는 문중(門中)을 이루었으니, 어찌 공께서 베푸신 크나큰 은혜(盛德之恩)가 작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외가(外家) 없는 친손(親孫)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저희 후손들은 영원히 선조(先祖)의 뜻(遺志)을 받들고 공의 은혜(恩寵)에 보답하며 그 길을 빛내고자 하는 마음에, 작은 정성(微誠)이나마 저희의 힘으로 상석(床石)과 묘표(墓表)를 삼가 세우고, 부족한 재주와 얕은 지식(淺才薄識)으로나마 몇 자의 묘명(墓銘)을 지어 올립니다.
단기(檀紀) 4316년(서기 1983년) 계해(癸亥)년 9월
외예손(外裔孫) 남윤환(南輪煥) 삼가 짓고 세우며,
외예손(外裔孫) 남인환(南仁煥)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