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남씨 석호공파 종중 스킵네비게이션

뿌리를 찾아서

영양남씨 석호공파 종중

입향조와 석호공파

석호정기

석호정기(石湖亭記) 역문(譯文)

석호정 복원 상상도

달성(達城)은 실로 영남의 큰 고을이요, 산천은 드높고 빼어나며 광대하고 깊으니, 멀리서 바라보면 푸른빛이 하늘에 닿은 듯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바로 팔공산(八公山)이 그 산이요 금호강(琴湖江)이 그 물이기 때문입니다.

계유년(癸酉年 1933년) 가을 구월, 제가 남쪽으로 길을 떠나 달성의 입석(立石)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서 홍기(洪基), 상모(相謨), 상교(相教), 상락(相洛) 등 여러 종친들께서 저를 마을 뒤편의 한 정자로 안내하며 말씀하시기를, "이곳은 우리 마을에 처음 들어오신 입향조인 부군(府君) 휘(諱) 실(實) 공을 기리는 정자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부군께서는 청송(靑松) 땅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금호강 가의 입석(立石)에 터를 잡으셨는데, 이 입석은 바로 팔공산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종친들이 이어 말하기를 "저희 못난 후손들이 할아버지께서 여러 대에 걸쳐 쌓아 오신 뜻을 가슴 깊이 새기며, 그 남기신 자취가 세월 속에 묻히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이에 정자를 세워 사모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제가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마음으로 아뢰기를, "아, 실로 그러하군요! 선조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은덕이 이토록 깊고, 여러 종친들께서 그 효성을 다해 추모하는 마음이 이처럼 지극하시니 말입니다. 선조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어언 삼백여 년이 흘러, 그분의 풍모와 운치는 아득하여 마치 저 멀리 사라진 나무나 하늘의 뜬구름처럼 붙잡을 길 없건만, 자손들이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은 지금껏 조금도 사라지지 않아, 마침내 이렇게 정성껏 터를 닦고 집을 지어 그 남기신 빛을 더욱 밝히려 하시는군요. 만일 선조 할아버지의 숨은 덕과 아직 다듬지 않은 옥돌과 같은 순수한 자질이 이토록 오래도록 전해 내려오지 않았다면, 어찌 이 같은 아름다운 일에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참으로 감탄스럽습니다."

세상의 기운은 고르지 않고 화와 복은 정해진 문이 없어, 사람이 한평생 살다가 초목처럼 그저 스러져 가는 것이 어찌 한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선조 할아버지께서는 외로이 아득히 먼 낯선 타향에 의지하여, 마치 연약한 새싹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듯했으나, 능히 몸소 애써 덕을 심으시니 그 자손이 번창하여 남쪽 고을의 명망 높은 종중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용암공(龍巖公) 휘 명신(命新)께서는 문학으로 당대에 큰 존경을 받으셨고, 예연공(禮淵公) 휘 석로(碩老)께서는 용암공의 뒤를 이을 아드님으로 일찍이 높은 과거에 급제하시어 영조시대에 등용되어 거의 크게 쓰이실 뻔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천수를 다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분들의 높은 뜻과 업적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휘 용대(龍大), 대곤(大坤), 형일(衡馹)과 같은 후손들이 계셨는데, 이분들 역시 모두 뛰어난 재능과 바른 행실로 선비와 벗들 사이에서 깊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흐르는 물을 따라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고, 가지 끝에서부터 그 뿌리를 더듬어보면, 어찌 근원이 깊어야 물줄기가 멀리 뻗어 나가고 뿌리가 튼실해야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는 자연의 이치와 다르겠습니까! 선조 할아버지의 삶과 그 후손들의 번성을 보며, 비로소 저는 선한 이에게 복을 내리는 하늘의 도리가 있음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장차 이 새로운 정자에 오르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선조 할아버지의 삶을 마음 깊이 생각하고 사모하며 그분과 같이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물며 그 후손된 분들이야말로 본래부터 혈족으로서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이고, 또한 간절히 추모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니, 분명 이 새 정자에 올라 선조께서 읽으시던 책을 읽고 그분께서 행하시던 바를 본받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선조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힘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굳게 믿고 기다리는 바입니다.

저 호수와 산의 맑고 아름다운 경치, 안개와 구름이 피어올랐다 스러지는 황홀한 풍경, 맑고 깨끗하여 티끌 세상을 벗어난 듯한 정갈한 맛,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누리는 여유롭고 한가로운 정취에 이르러서는, 이곳에 올라와 직접 보는 이가 스스로 눈으로 목격하고 마음으로 깨달을 것이니, 저의 미천한 붓과 말로는 감히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계유년(癸酉年 1933년) 음력 10월16일에 후손 붕(鵬)이 삼가 기록합니다.


※ ‘석호정기’는 1933년 영덕 일족인 휘 붕께서 종중 집성촌인 입석마을과 석호정을 다녀가시고 난 소회를 적은 글이며, 본 글은 한문으로 된 문장을 의역하여 풀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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