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남씨 석호공파 종중 스킵네비게이션

뿌리를 찾아서

영양남씨 석호공파 종중

입향조와 석호공파

입석회관(석호정)

입석회관(석호정)

입석회관

입석회관

과거 비행장이 들어 선 터에 자리잡고 있던 종중의 상징인 석호정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종중의 어른들이 힘을 모아 입석회관을 건립하고 별칭으로 '석호정'이라 불렀다.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8-3번지에 위치한 입석회관은 현대식 2층 건물로 종중의 각종 행사, 회의를 위해 사용되어 왔다. 건물의 노후와 관리의 어려움으로 2024년10월경 매각하였으며, 현재는 새로 매입한 효목동 건물을 입석회관으로 대체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3층에 종중사무국이 입주해있다.


입석회관기(立石會館記)

명산 팔공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앞에는 금호강이 비단결 같이 굽이쳐 흐르는 수려한 해안의 중심, 입석에 입향조이신 휘 실, 호 석호공께서 터를 잡으신 지 삼백오십여 년이 되었다. 공께서 글을 읽고 시를 읊으며 선비의 덕과 도를 닦고 가문에 효와 우애를 강조하여 후손들이 면면히 이어온 곳, 입석 동산에 있는 정자가 바로 석호정이다.

이곳은 공께서 시례를 강론하시던 곳이요, 손님을 접대하시던 곳이요, 친척들과 회포를 풀던 곳이요, 초야에 거하시면서 나라를 걱정하시던 곳이며, 후손들이 모여 조상을 숭배하고 친족 간의 화목을 다지던 곳이요, 경술국치 이후로는 마을 선비들의 학당이기도 하였다.

아! 어찌 뜻하였으랴. 경인년 난리가 일어나자 동촌의 일부가 비행장에 편입되어 입석 세거지도 군 기지가 되어 석호정은 수용되고, 후손 백여 호도 가산을 수용 당하여 동남쪽으로 흩어지게 되니 애석하도다. 우리의 세거지와 선조의 정자가 하루아침에 변고를 당하다니 어찌 된 말인가! 금호강변에서 세거지와 정자를 바라보니 무심한 구름만 오락가락하니 만감이 교차하는구나. 정자가 헐린 지 사십 성상이 넘도록 재건하지 못하여 조상께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어 온 종친들이 수심에 잠겨 있다가 다행히 입석종회장 효일 씨의 주도로 온 종친들이 협찬하여 석호정 재건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승환 씨를 추대하여 정성껏 재건 비용을 마련하여 불로동에 있는 종답에 현대식 건물 2층을 건축하고 1층은 영양남씨 입석회관으로 하고 2층에 석호정 현판을 걸으니 참으로 두렵고 기쁜 마음이 새롭다. 멀지 않은 시일 내에 3층에 옛 모습의 정각을 세울 것을 온 친족들이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으니 조금이나마 죄를 씻는 심정이다.

이번 역사에 윤환 씨와 승환 씨의 숭조하는 정성으로 거금을 희사한 덕분에 이 회관과 유허비를 이루게 되었음을 아울러 기록하여 후세의 귀감으로 삼는다.

갑술년 늦가을에 후손 구의원 종환 삼가 적음.

석호공탄신400주년기념추모제(1999년)

4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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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주년 기념 책자

석호공탄신400주년기념비제막식(2000년)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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