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과 조상의 숨결
영양남씨 석호공파 종중
17세조 예연공 휘 석로의 아버지는 남명신(南命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이수천(李壽天)의 딸이다. 배우자는 일직손씨(一直孫氏)로, 손경림(孫慶臨)의 딸이다.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남운기(南雲紀)이고, 장녀는 최경회(崔景晦)에게, 차녀는 서상복(徐相復)에게 시집갔다. 공은 1729년(영조5년)에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에서 태어났다. 8세 때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53년(영조29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인 1754년(영조 30) 증광시에 급제한 뒤에 경양역승, 만경 현령, 은계 찰방 등을 역임하였다. 경양역승으로 있을 때 기근으로 인해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자 소를 빌려주어 농사를 돕고, 봉급을 줄여 양식을 대주어 백성들이 농사를 그만두지 못하게 하였다. 또 만경현령으로 있을 때 연이은 기근으로 고달프고 곤궁한 백성들이 길에 가득차자, 공은 이들을 위로하여 안정시키고, 심지어 솜과 녹봉을 보내어 조금이라도 백성을 구제하였다. 또 병풍에 「팔탄시(八歎詩)」를 써서 상심하는 마음을 담았다. 은계찰방으로 있을 때 옛 관례를 준수하여 역참에 돌던 역병을 모두 없앴다. 뿐만 아니라 일을 처리할 때 한결같이 옛 관례대로 처리하였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지변(壬午之變)이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은둔하고 더 이상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1774년(영조50년)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4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