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남씨 석호공파 종중 스킵네비게이션

선산과 조상의 숨결

영양남씨 석호공파 종중

대암

석문세고 서문

석문세고(石門世稿) 서문(序文)

무릇 선비들이 세상에 태어나 혹은 초야에 묻혀 뜻을 구하기도 하고, 혹은 과거에 나아가 재주를 펼치기도 하였으니, 비록 세상에 나아감은 같지 않더라도 다시 행한 것은 반드시 효도와 우애를 근본으로 한 뒤에 그 가르침이 가정에 행해져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이제 남씨 석문세고에 이러한 사실이 밝혀져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용암 남공(龍菴南公)은 자질이 참으로 아름답고 학문을 부지런히 하였으며, 효우의 근본을 돈독히 하고 어버이를 효도로써 섬겼으며, 족친 간에는 화목으로써 대접하여 향당 친구들을 대우함에 모두에게 기쁨을 얻었다. 일찍이 과거 공부를 하였으나 벼슬을 하지 않은 것은 용암 옆에 정자를 짓고 자연과 더불어 이야기하며 좌우에 책을 두고 성현의 말씀을 음미하고 요순의 덕화를 노래 부르면서 장차 세상을 마칠 때까지 그것을 싫어하지 않는 듯하였다.

장자인 예연공(禮淵公)은 젊은 나이에 등과하여 백 리나 되는 고을의 현령을 맡았으니, 곧 충의로써 나라에 은혜를 갚는 데 힘쓰고, 안타까워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씀이 실로 세속의 자제들을 교육하는 데 특이하였다. 그리고 예연공은 가정 교육을 준수하여 자신이 행함에 방정함이 있었고, 조정에 올라 임금의 명으로 어느 날 사기를 기록하는 은혜를 입었으며, 현감에 부임하여 백성을 구휼하는 은택은 김무에 가까웠다. 어버이께서 병환으로 신음하시던 날에 마음이 먼저 감동되어 집으로 돌아와서 임종을 모셨으니 그 효성이 특별하였다.

아마 공은 부자간의 효우를 본성으로 삼고 그것을 미루어 일을 행하였으니, 곧 부모에게 효를 다하여 친구에게 신임을 얻었던 것이었다. 혹은 숨어 살고 혹은 세상에 나아감에 어디에 간들 마땅하지 아니하였으리오.

나의 증조부 백불암 선생(百弗菴先生)은 일찍이 자신을 삼가 조심하면서 사람을 접견하여 그 정도를 깨달았고, 그리고 예연공은 바로 여덟 살에 그 문하에 나아가 배움을 청하여 그로 하여금 그 뜻을 말하게 하니, 곧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한 뒤에 천하가 태평하다[修身齊家然後에 閒臥太平春이라]"라고 말하고, 또 "누가 알리요, 골짜기에 졸졸 흐르는 물이 흘러가 산 밖 만 리 넓은 강이 될 줄을[誰知澗邊溶溶水 去作山外萬里江이라]"이라고 말하였으니, 그의 재주와 뜻이 이미 이와 같았다. 본디 자질이 뛰어나게 총명하여 오직 스승의 가르침에 따랐으니, 이제 일기에서 상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겨우 무작(舞勺, 15세)에 이르러 시는 문장을 이루었고, 필법은 지극히 묘했으니, 세상에 시문과 서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두 자신은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 후에 벼슬이 현감과 우체 업무를 맡는 직책에 발탁되어 제수되었으나, 공은 그다지 만족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곧 공이 스스로 기대했던 것은 지난번에 말한 바 수신을 근본으로 삼았으니, 아마 경서를 다시 익혀서 타고난 본성대로 완전히 사람들을 양성시키려 했던 듯하다. 애석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고을 사람들이 탄식하고 안타까워함이 대개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는다.

공의 집이 여러 번의 서리와 어려움을 겪어 문적(文蹟)이 흩어져 없어지고 남고 보존된 것이 없었는데, 그 증손인 형일(衡馹)이 선조의 뜻을 추념하여 고생하며 부지런히 찾아 모아 두 분의 글을 약간 책으로 얻었으니, 그 이름을 석문세고(石門世稿)라 하였다. 대개 용암과 예연이 당시 거주하던 곳의 지명을 따서 스스로 호를 삼은 것이 모두 석문 안에 있으니, 곧 여기에서 그것을 본다면 곧바로 글을 안고 자연을 즐기는 뜻은 나라를 위하는 충성심과 백성을 사랑하는 정성, 그리고 유학에 힘쓰고 효우에 돈독한 실제적인 자취를 그 만분의 일이라도 증명한 것 같으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형일보(衡馹甫)가 나에게 서문을 요청하니, 나는 본디 보고 아는 것이 없어 감히 그분들을 위한 서문을 쓸 수 없으나, 특히 선조의 두터운 정의로 그 효심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므로 감히 끝까지 사양할 수 없어 대략 그 전말을 위와 같이 기록하노라.

무오년 맹춘 상한(孟春 上澣, 음력 1월 상순)
경주 최효술(慶州 崔孝述) 삼가 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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